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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꼴42 실리콘밸리, 한 달간의 Piscine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 본문
에꼴42를 소개하는 식으로 작성할까 했으나 관련된 정보는 이제 한국어로도 쉽게 찾을 수 있으니 나의 개인적인 감상에 집중해 적어보았다. 스스로 기억에 담아두고자 하는 것들을 일기 형식으로 작성했다.
2019 여름, 미국에서 보낸 한 달의 기록
꿈 같았던 한 달의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잊지 아까운 기억들을 되새겨 보려고 한다. 가히 꿈 같았다고 표현할 만큼 행복했던 시간, 그 모든 순간이 잊히지 않고 언제까지고 추억으로 남아있길 바란다. 그러나 그 전부를 기록하기는 상당히 귀찮으니 그 부분은 머리가 알아서 해줄 것이라 믿고 여기에서는 생각의 변화와 인상적이었던 점을 위주로 정리하겠다.
배경 설명을 간략히 하고 본론으로 들어갈 텐데, 다음 항목들을 뒤에서 풀어서 설명하겠다. 순서는 큰 의미 없이 생각나는 대로 매겼다.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관계가 마음에 들었다.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다.
남미 쪽 바이브가 나랑 잘 맞는 것 같다.
성공만이 인생의 목표가 아님을 상기했다.
자연스러운 토론 문화가 인상적이었다.
사실 몇 개 더 있는데 설명하기 힘든 부분과 개인적인 부분은 제외했다.
2019년 7월 5일부터 8월 7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프리몬트에서 한 달을 보냈다. 방문 목적은 Ecole 42 실리콘밸리 캠퍼스 입학시험을 치르는 것이었다. Ecole 42는 프랑스에서 시작된 새로운 방식의 코딩 교육기관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입학시험은 Piscine이라고 불리는데, 300명가량의 지원자가 한 달 동안 합숙하며 치르게 된다. 한 달간 C언어를 공부하면서 그 성과를 측정하는 식인데, 날마다 새로운 강의 영상과 과제를 주면 스스로 공부해 과제를 제출하게 된다.
1.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관계가 마음에 들었다.
친구의 폭이 한국과는 비교되지 않게 넓었고, 형 동생 하는 상하 관계가 없으니 보다 유연한 소통과 논의가 가능했다. 나이 따져가며 말을 높일지 낮출지 고민하는 대신 손을 내밀며 인사하면 되니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나이가 많으면 형, 형이면 형으로서 지킬 책임이 있다는 게 한국의 상식이다. 그 상식에서 벗어나 사람 대 사람으로 연상을 마주하는 경험은 상당히 신선했다. 한 달간 가장 가깝게 지냈던 룸메들을 생각해보면, 우선 나와 나이가 비슷했던 둘과는 다양한 관계의 모습이 섞인 느낌이었다. 실없이 장난칠 수 있는 친구인 동시에 마음 놓고 의지할 수 있는 형이었고 때론 도와주고 싶은 동생이었다. 서로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의 척도를 따지자면 위아래가 고정된 관계보다 우수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다른 룸메 하나는 스물일곱이었는데 마찬가지로 편한 친구 관계로 지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형으로 인식하지 않았음에도 형 같다는 느낌, 성숙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는 점이다. 주로 자기관리에 철저한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요약하자면 형 동생이라는 틀에 끼워 넣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하니 관계 형성과 의사소통이 수월했고, 성숙함(어른스러움)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2.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번 한 달 동안은 영어를 잘하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큰 어려움 없이 잘 지낼 수 있었으나 혼자였다면 음식 주문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서로 적당한 영어를 구사하고 악센트가 분명해 큰 어려움이 없었는데, 영어권 국가 사람들의 말은 반도 못 알아들을 때가 많았다. 지금 단계에서 중점적으로 공부해야 할 것은 주류 영어(미국식, 영국식, 인도식 등)의 악센트에 익숙해지는 것과 단어 공부라고 생각한다.
영어에 대해 적다 보니 생각난 게 있는데, 의사소통이 완벽하지 않아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게 의외였고 신기했다. 생각해보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간에도 지식이나 경험의 차이로 대화가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그래도 충분히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누군가와 친구가 되는 데에 완벽한 의사소통이 필수적인 것은 아닌가 보다.
3. 남미 쪽 바이브가 나랑 잘 맞는 것 같다.
우리 방에 브라질, 스페인, 베네수엘라 애들이 있었는데 특히 브라질 감성이 정말 좋았다. 물론 브라질 사람들 간에도 개인차가 분명 있을 테고 이 친구가 특이한 케이스일지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만난 남미 사람들은 대부분 웃음이 많았고 저마다 삶을 즐기는 법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늘 웃고 있던 미겔, 눈에 띄는 모두에게 말을 걸고 다녔던 쥬옹, 가로등 불빛 아래 둘러앉아 노래에 빠졌던 금요일 저녁, 계획에 없던 공원에 누워 아무 걱정 없이 보냈던 샌프란시스코의 오후를 아마 잊지 못할 것 같다.
4. 성공만이 인생의 목표가 아님을 상기했다.
성공이 인생의 목표가 된다면 모름지기 성공에 최대한 빠르게 이르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마련이다. 그리고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계획은 뒤처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계획을 따라가지 못하면 낙오자가 된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재수나 대학 진학 후 꿈을 바꾸는 것은 시간을 낭비한 것으로 인식된다. 나 또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고, 확실한 꿈을 찾아 한 번에 성공에 이르고자 했다. 그렇다 보니 자연히 꿈을 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확실한 꿈이라는 건 상상의 동물 같은 거니까.
인생의 목표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언제든 변할 수도 있고 혹은 없을 수도 있다. 반드시 하나일 필요도 없으며 복수일 경우 우선순위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사실 인생의 목표를 가시화하는 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배낭 하나 짊어지고 온갖 것을 경험하고 다니는 아렌에게서 배웠고 나이 육십에 호기심 하나만으로 새로운 길에 나선 찰스에게서 배웠다.
'성공' 하나뿐이었던 목표에 다른 한두 가지만 추가해도 많은 것이 달라진다. '행하는 모든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다'라든지 '더 많은 것을 경험한다' 같은 것. 목표가 복수가 됨으로써 재수는 새로운 경험이 되고 진로의 변경은 즐거움을 찾는 과정이 될 것이다. -더 적절한 예시가 떠오르지 않아 아쉽다.-
그간 개발자가 내 길이 맞는지 고민이 많았는데 이젠 일단 해보려고 한다. 계속 고민하며 앉아만 있으면 답이 나올 리 만무하고 설령 이게 내 길이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라도 그간의 시간은 분명 즐거울 테니까. 그거면 됐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인생의 목표를 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자신이 세운 목표에 휘둘리는 것은 그만큼 멍청한 일이 또 없다는 것이다.
5. 자연스러운 토론 문화가 인상적이었다.
토론 문화라고 할까. 서로 모르는 것을 물어가며 공부하고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문화가 마음에 들었다. 용정과 비슷하기도 했고, 모르는 사람에게도 서슴없이 질문하고 곧바로 생각의 교류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는 더 자유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아무래도 나는 이런 문화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진로를 고민할 때마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던 걸 생각하면 이런 게 적성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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